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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인문학연구단
한국전쟁체험담 대국민서비스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이 수집한
평범한 사람들의 전쟁체험담(동영상)과
관련사진 및 연구 결과를 서비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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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사진이야기
한국전쟁 사진이야기
한국전쟁체험담 조사연구팀이 조사 과정에서 발굴한 한국전쟁 관련 인물, 유적, 유물 등에 얽힌 사연을 사진과 함께 생생하게 들려줍니다.
체험담
전쟁 통의 아이들 놀이
거제도가 고향인 화자는 한국전쟁 당시 주로 피난민을 많이 목격했다고 한다. 이 시절 북에서 내려온 피난민들이 각 가정에 들어와 더부살이 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화자의 집에도 함경도에서 피난 온 한 가구가 들어와 살았다. 고향에서 대장간하다가 내려온 남자는 부인을 셋이나 데리고 내려왔고, 셋째 부인이 화자의 집에서 아이를 출산했다고 한다. 전쟁 중이었지만 거제도까지는 전쟁의 여파가 전혀 미치지 않았고 피난 온 아이들과 각종 놀이를 하며 바닷가에서 놀았다. 전쟁 전 부친이 보도연맹에 연루되어 잡혀가 죽을 뻔 했지만 친척의 도움으로 살아 나왔다고 한다. 마을 사람 중 여러 명이 보도연맹에 관련되어 끌려 갔었고 사망한 사람도 있었다. 거제도 송정이라는 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처형당했다고 한다.
구술자 : 정광자 / 구술일 : 2013-08-01
장소 : 경남 마산시 장군동1가 자택
키워드
한국전쟁,
피난민,
함경도,
보도연맹
인민군보다 지방 빨갱이가 더 무서웠던 시절
한국전쟁 당시, 제보자는 지방 빨갱이가 제일 무서웠다. 동네 빨갱이가 오빠를 잡아서 끌고 갔으나, 인정을 많이 베풀었던 면장 부친과 경찰 형부 덕에 오빠는 살아 나왔다. 지방 빨갱이들은 권총을 차고 다니면서 나락과 조의 수를 세어 거둬갔다. 전쟁 전 돈을 빌려갔던 사람들 중에는 전쟁 후 돈을 돌려받을 생각도 없는 제보자를 괴롭혔다. 그래서 제보자는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논밭에 숨어 지내기도 하였다. 인민군들이 후퇴할 때 집에 불을 질렀다. 그래서 각종 문서와 돈이 불에 타기도 하였다. 경찰가족이었던 제보자는 언니와 조카와 함께 밤이면 경찰서로 피해 지내야 했다.
구술자 : 김영순 / 구술일 : 2014-04-16
장소 :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1가 14-1 자녀댁
키워드
지방빨갱이,
전소,
나락,
경찰가족
피난길에 자식들을 눈에 묻다.
왜정 때 공출 때문에 열다섯 살에 시집을 간다. 오빠는 군인으로 뽑혀 갔으나 소식을 알 길이 없다. 전쟁이 나자 남편은 금강산 쪽으로 피난을 간다. 동란 때 시부모와 친정어머니, 아이 둘을 데리고 만삭의 몸으로 문막으로 피난을 간다. 한 아이는 홍역을 앓다 죽고 갓 태어난 아기는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는다. 홍역을 앓다 죽자 눈으로 덮어 무덤을 만들어 준다. 먹을 것을 가지러 간다던 시부모는 열흘 간 소식을 알 수 없자 친정어머니와 함께 굶주린 배를 안고 원주로 간다.
구술자 : 한용분 / 구술일 : 2012-07-26
장소 : 강원 횡성군 서원면 창촌리 창촌2리 실비식당(구연자의 집)
키워드
왜정,
공출,
금강산,
피난,
홍역
한국전쟁체험담 연구
한국전쟁체험담 연구
한국전쟁체험담을 토대로 이루어진 전쟁체험 관련 연구논문, 언론기고문 등을 제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