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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술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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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인문학연구단
한국전쟁체험담 대국민서비스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이 수집한
평범한 사람들의 전쟁체험담(동영상)과
관련사진 및 연구 결과를 서비스합니다.
한국학
양조장
9.28
풍문
한국전쟁 사진이야기
한국전쟁 사진이야기
한국전쟁체험담 조사연구팀이 조사 과정에서 발굴한 한국전쟁 관련 인물, 유적, 유물 등에 얽힌 사연을 사진과 함께 생생하게 들려줍니다.
체험담
니가 죽으면 문신도 사라져
피난 나와 살 때 네 명의 친하게 지냈다. 전쟁 통에 한 명의 친구가 죽고 세 명이 남았다. 한 친구가 피난 다니면서 언제 어떻게 죽을지 모르니 생존 표식으로 문신을 새기자고 제안하였다. 바늘에 먹을 묻혀 친구의 숫자만큼 팔에 점을 새겨 넣었다. 친구들은 친구가 죽으면 팔의 문신이 사라지니 문신을 통해 서로의 생사여부를 확인하자고 하였다. 지금 구연자의 팔에는 두 개의 문신만 남아 있다. 구연자는 친구가 한 명 죽었나보다고 말했다.
구술자 : 고영 / 구술일 : 2012-07-24
장소 : 전남 담양군 창평면 구연자의 집
키워드
문신,
바늘,
먹물,
표식,
생사확인
여교사에서 여성빨치산이 되다
이복순은 광주사범학교 재학 중 민주학생동맹에서 활동을 하였다. 졸업 후 보성으로 발령을 받아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였다. 이복순이 교직생활 중에 여순사건이 일어났고, 이후 육이오가 터졌다. 이복순의 가족들은 오빠, 이모, 삼촌 모두 항일투사였으며, 그 가족들의 영향으로 자연스럽게 사회주의 사상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오빠는 예비검속 때 처형을 당했다. 전쟁으로 휴교가 되었다. 제보자는 오빠가 사망 전 오빠를 만나러 오빠 집엘 찾아갔다. 오빠집 옆에 위치한 전남여고가 전남도당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오빠집에서 만난 빨치산들과 만나게 되었고, 인민군이 후퇴하면서 여성빨치산으로 입산하게 되었다. 입산한 지 이 년 만에 빨치산 소탕 총공세 때 체포되었다. 빨치산으로 활동하는 동안의 산 생활은 몹시 힘들었다. 동상이 걸려 손발이 잘리는 사람도 많았다고 했다. 세균전 때는 짚을 태운 물로 빨래한 덕에 제보자가 부대원들은 재기열에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제보자는 체포당시 많이 굶어서 저항할 힘이 없어 많이 잡혔다고 한다. 제보자는 대전형무소에서 7년 형을 마치고 나와 자신을 짝사랑하며 기다려준 남편을 만나 결혼했다.
구술자 : 이복순 / 구술일 : 2013-05-23
장소 : 광주 북구 일곡동 1∼99
키워드
광주사범학교,
여성빨치산,
대전형무소
도와줬던 인민군, 살았으면 만나보고 싶다
한국전쟁 당시, 열일곱 살 어린 인민군 패잔병이 손들고 들어와 살려달라고 하였다. 제보자는 어린 인민군의 총을 빼앗고, 자신의 옷을 갈아 입혔다. 이웃사람과 교대로 어린 인민군의 밥을 먹여주며 숨겨주었다. 그러다가 제보자는 자신이 책임을 지겠다고 약속을 하고 어린 인민군을 이웃집에 꼴꾼으로 취업을 시켜주었다. 인천상륙작전 이후 17연대가 구리에 입성하였다. 이웃집 주인이 어린 인민군의 신분이 탄로날까 두려워하자 제보자가 백인엽에게 사정을 이야기하였다. 백인엽은 어린 인민군을 잘 훈련시켜서 국군으로 만들테니 걱정말라며 제보자를 안심시킨 뒤 인민군을 데리고 갔다. 어린 인민군이 그때 죽었는지, 그 이후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다. 살아 있으면 만나보고 싶다.
구술자 : 방호덕 / 구술일 : 2014-02-12
장소 : 경기 구리시 교문동 제보자 자택
키워드
인민군,
패잔병,
인천상륙작전,
백인엽,
구명(求命)
한국전쟁체험담 연구
한국전쟁체험담 연구
한국전쟁체험담을 토대로 이루어진 전쟁체험 관련 연구논문, 언론기고문 등을 제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