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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인문학연구단
한국전쟁체험담 대국민서비스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이 수집한
평범한 사람들의 전쟁체험담(동영상)과
관련사진 및 연구 결과를 서비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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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사진이야기
한국전쟁 사진이야기
한국전쟁체험담 조사연구팀이 조사 과정에서 발굴한 한국전쟁 관련 인물, 유적, 유물 등에 얽힌 사연을 사진과 함께 생생하게 들려줍니다.
체험담
국군에 의한 문경(석봉리 석달마을) 민간인 학살.
1949년 12월 24일 이곳 석봉리(일명 석달마을)에 국군 2사단 25연대 3대대 7중대 소속 2개 소대가 들이닥친다. 그리고는 아무 이유없이 마을 주민들을 대낮에 불러내고, 집단 학살을 시작했다. 마침 방학식을 마치고 학교에서 돌아오던 초등학교 어린이, 엄마 젖을 물고 있던 유아까지 처참하게 총질을 가했다. 마을주민 124명 중에 86명이 사망하고 그중 14세 이하가 28명이었다. 화자인 채홍달씨의 모친은 화자를 임신 중이었다. 화자의 모친은 어깨 관통상을 입고도 살아남아 화자의 목숨도 보전될 수 있었다. 이 사건은 거창 양민학살사건보다 먼저 일어난 참극으로 이전에도 조금씩 세상에 알려지긴 했다가 2011년 대법원 공소시효 재검토 판결로 인해 다시 세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 화자는 채홍달씨는 당시의 상황을 소상하게 구연해 주었다.
구술자 : 채홍달 / 구술일 : 2012-03-09
장소 : 경북 문경시 산북면 석봉리 양민학살 현장
키워드
석봉리,
집단 학살,
양민학살사건,
공소시효
인민군보다 지방 빨갱이가 더 무서웠던 시절
한국전쟁 당시, 제보자는 지방 빨갱이가 제일 무서웠다. 동네 빨갱이가 오빠를 잡아서 끌고 갔으나, 인정을 많이 베풀었던 면장 부친과 경찰 형부 덕에 오빠는 살아 나왔다. 지방 빨갱이들은 권총을 차고 다니면서 나락과 조의 수를 세어 거둬갔다. 전쟁 전 돈을 빌려갔던 사람들 중에는 전쟁 후 돈을 돌려받을 생각도 없는 제보자를 괴롭혔다. 그래서 제보자는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논밭에 숨어 지내기도 하였다. 인민군들이 후퇴할 때 집에 불을 질렀다. 그래서 각종 문서와 돈이 불에 타기도 하였다. 경찰가족이었던 제보자는 언니와 조카와 함께 밤이면 경찰서로 피해 지내야 했다.
구술자 : 김영순 / 구술일 : 2014-04-16
장소 : 서울 영등포구 양평동1가 14-1 자녀댁
키워드
지방빨갱이,
전소,
나락,
경찰가족
총을 네 번 맞고도 살아남다
담양 가마골은 국군 2개 사단이 참패할 정도로 산세가 험했다. 이곳을 제보자 중대가 들어가서 반란군 아지트를 찾아 불을 내는 성과를 거두었다. 돼지고기, 소고기, 도롬프스 등 포상으로 내려져 중대가 잔치를 벌였다. 효문산전투에서 동료가 총에 맞아 죽었다. 그런데 죽은 시체가 뻣뻣하여 업고 나올 수가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버려두고 나와야 했다. 그리고 또 한 번은 총을 네 번이나 맞았지만, 운좋게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살아남았다.
구술자 : 이상태 / 구술일 : 2013-01-23
장소 : 서울 강북구 수유동 아들 자택
키워드
토벌대,
가마골전투,
효문산전투,
총격,
승리
한국전쟁체험담 연구
한국전쟁체험담 연구
한국전쟁체험담을 토대로 이루어진 전쟁체험 관련 연구논문, 언론기고문 등을 제공합니다.